2011-08-18

[고종석 칼럼/6월 12일] 손호철과 강준만에 잇대어- 한국일보 2008-06-12 02:40:21


[고종석 칼럼/6월 12일] 손호철과 강준만에 잇대어



고종석 객원논설위원


주제넘은 개입이다 싶어 잠자코 있으려 했으나, 입이 근질근질해 몇 자 적는다. 이 글은 5월26일자 손호철의 정치논평 <김용갑을 다시 생각한다>와 그 글에 대한 긍정적 논평 격인 6월4일자 강준만 칼럼 <‘이념’과 ‘인격’ 사이에서>의 독후감이다.우선 두 분의 논지에 내가 공감하고 있음을 밝혀야겠다. 나는 진보주의자가 아니므로 손 교수와 똑같이 말할 수는 없지만, 손 교수 발언에서 ‘진보적’을 좀 모호한 용어인 ‘리버럴’로 바꿔치기하면, 그의 말을 고스란히 되풀이할 수 있다.
곧 “나 자신은 리버럴하다고 생각하지만, 리버럴하면서도 인간이 안 되고 격이 없는 사람보다는 보수적이어도 인간이 되고 격을 갖춘 사람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”고. “이념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므로 인간이 안 된 사람이 진보적 이념을 가지고 운동을 한다고 해 보아야 그것은 다 거짓”이라거나 “이념 못지않게, 아니 이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클래스 내지 격”이라는 그의 말에도 공감한다.
이념과 윤리, 이념의 윤리
마찬가지로, “진영주의 앞에서 도덕은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 된다. 이런 사고방식은 정쟁(政爭)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주요 이유”라는 강 교수의 진단에도, “인격은 막대한 공적 영역이므로 인격과 이념은 같이 가야 한다”는 그의 처방에도 공감한다.
이념에 앞서 ‘인격’이나 ‘인간’을 중시하는 두 분의 견해에 이렇게 공감하면서도, 몇 가지 개운치 않은 생각이 가슴에 얹힌다. 우선 특정한 사람의 ‘인격’은 누가 판단하는가? 나 자신을 두고도 어떤 사람들은 썩 형편없는 인간이라 판단할 테고, 어떤 사람들은 썩 괜찮은 사람이라 판단할지도 모른다. 그리고 그 ‘인격’의 판단에는 연고나 사적 이해관계가 개입할 수도 있고, 심지어 ‘이념’이 개입할 수도 있다. 연고나 이해관계, 심지어 ‘이념’에서 독립된 ‘인격’을 추출해내는 것이 늘 쉽지는 않을 것이다.
그것이 대체로 가능하다 하더라도 문제는 미묘하다. 예컨대 나는 소설가 복거일씨나 이문열씨와 두터운 친분은 없지만, 이들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‘사람됨’에 대해 나쁘게 얘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. 말하자면 이 두 작가의 ‘인격’은 일반인 평균보다 뛰어날 가능성이 크다. 그러나 나는 그들의 몇몇 소설과 신문칼럼에서 드러나는 우승열패적 자유지상주의나, 보수를 넘어서 복고적, 봉건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‘이념’에 화가 난다. 그리고 그 ‘이념’의 해악은 그들 ‘인격’의 넉넉함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믿는다.
반면에 역시 나와는 친분이랄 게 거의 없지만, 주변에서 험담의 표적이 되고 있는 소설가도 있다. 그 험담들의 반만 진실이라 하더라도 그는 평균 이하의 도덕성을 지닌 이다. 그러나 그의 몇몇 소설은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횃불 노릇을 해 왔다. 그와 이념을 달리 하는 이들도 그 작품들의 격은 인정한다.
이럴 때, 그 인격의 하찮음 때문에 작품의 격도 ‘거짓’으로 백안시해야 하는 걸까? 선뜻 그렇다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. ‘글이 곧 사람’이라는 말은 적중률이 매우 낮은 격언이다. 사람에게는 제 글로 제 인격을 가릴 수 있는 ‘교활함의 재능’이 있기 때문이다.
김용갑을 다시 생각한다?
마지막으로 ‘인격’이 ‘이념’보다 우위에 있다 하더라도, 그 적용의 한계 문제가 남는다. 나는 손 교수가 ‘이념’과 ‘인격’을 논하면서 김용갑씨를 예로 든 것은 적절치 않았다고 판단한다. 김용갑씨의 정계은퇴 선언 앞뒤로, 그의 ‘인격’을 기리는 갖가지 미담을 나 역시 접했다.
그러나 김용갑씨는, 이념이고 뭐고를 떠나서, 전두환 정권의 안기부 기조실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던 이다. 반란-내란정권의 비밀경찰과 사정기관을 지휘했던 사람이, 제 주변 사람들에게 아무리 넉넉한 ‘인격’을 발휘했다 해도, 나는 그에게 너그러울 수 없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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